자연농원 시절 사양과를 두고 돼지를 키웠던 것처럼 대기업에서 돼지를 키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일반 소규모 축산농가에서 돼지를 키우는 것과 많이 다를까요? 전자의 1980년대 직원들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자료를 찾아봤어요.
< 목차 >
1. 세계 속의 삼성 안에 ‘돼지농장’이 있었다!
2. 1981년 삼성그룹 자연농원 양돈부 직원들이 느낀 내부 문제점
3. 재기발랄 해법, “돼지 똥을 자식 똥처럼” “가족 친지를 자연농원에 초대”
4. 마치며
1. 세계 속의 삼성 안에 ‘돼지농장’이 있었다!
대기업에서 축산 분야에 도전하는 게 생소했음에도 고 이병철 회장은 1970년대 초부터 남다른 철학을 지녔는지 돼지 키우기에 도전했어요.
오늘날 가전,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삼성의 역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돼지농장, 그것이 에버랜드 내에 있었습니다.
돼지를 키우고 고기를 가공해서 수출하기까지 했다니 정말 신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득 발견한 1980년대 양돈부 직원들의 교육 내용이 담긴 자료를 보니 당시 직장인이자 축산분야 종사자로서의 고민이 눈에 띄었습니다.
순전히 호기심에 내용을 추리다 보니 가슴 쓰라리게 공감되고 재밌는 요소들도 있더군요.
2. 1981년 삼성그룹 자연농원 양돈부 직원들이 느낀 내부 문제점
먼저 1981년 당시 자연농원 사양과 네 팀 직원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내부 문제점을 추려봤어요.
① 목표의식과 팀워크 정신이 부족하다.
② 월급쟁이란 안일한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주인의식이 부족하다.③ 상하간의 대화 부족 및 하급자에 대한 신상파악 결여
④ 상사의 권위의식, 상사를 향한 기피 현상
여기까지 보면 사실 약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회에서 직장생활하며 피부로 느끼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른바 ‘요즘 것들은’ 이라고 표현하며 과거는 더 나았다는 전제의 대화는 요즘도 많이 나누죠. 그런 말은 조선시대 일기에도 존재했다고 하니 아마도 위와 같은 지적 내지는 자성의 결과물이 비슷한 이유인가 봅니다.
특히 회사를 향한 ‘주인의식’과 발전 동력인 ‘우리’라는 공동체 정신이 부족하다보니 단절과 소통의 문제가 그렇게 존재했다는 거겠죠.
다음 문제점을 볼게요.
⑤ 업무가 힘들고 권태감을 느낀다.
⑥ 능력개발에 대한 인정을 받기 어렵다.
⑦ 숙직 야간대기가 빈번하다.
⑧ 현장 점심 휴식시간이 거의 없다.
어느 직업이나 힘들지 않은 일은 없고, 권태감도 찾아오기 마련이죠. 능력개발에 힘써도 경쟁사회다보니 인정받기란 하늘의 별따기고 말입니다. 이것 역시 같았군요.
⑨ 근무 중 외부연락이 두절된다.
⑩ 지시 전달사항이 신속치 못하다.
⑪ 퇴근 후 교육시간이 너무 많다.
⑫ 남들이 쉴 때 (명절, 공휴일) 쉴 수 없다.
실리콘밸리였나, 과거 TV에서 본 한 회사는 근무 중 집에서 오는 전화는 무조건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일보다 가정의 안전과 평화가 우선이라는 게 회사 방침이었는데 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이라도 근무 중 연락에는 눈치가 보이죠. 자기계발과 교육에 매진해야 도태되지 않는다는 인식은 그때도 비슷했나 봅니다.
아주 재미있다고 느낀 건 아래의 항목들입니다.
⑬ 축산인의 천대화로 직업관이 결여된다.
⑭ 근무환경이 지저분하고 냄새가 난다.
⑮ 근무 범위가 양돈장 내로 한정되어 외부 친분관계가 원활치 못하다.
아무리 ‘삼성 아래 돼지농장’이라도 똥냄새가 온 몸에 배도록 축산업에 종사하는 셈이니까 직업적으로 좋게 평가받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더욱이 종일 돈장에 갇혀 있어야 하는 처지다보니 폭넓은 대인관계 형성이 어려운 것도 문제로 보았더군요.
3. 재기발랄 해법, “돼지 똥을 자식 똥처럼” “가족 친지를 자연농원에 초대”
직원들은 직업관에 대한 인식이나 대인관계 문제에 있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아주 재기발랄한 답을 써놓았어요.
“돼지 똥을 자식 똥과 같이 생각한다.”
하하하. 사실 맞지요. 자식 똥 치우는데 냄새가 날 일인가요. 특히 “년 2회 이상 가족 및 친지들을 자연농원에 초대한다”는 것도 애잔하지만 유쾌한 답이었습니다.
숙소생활을 하는 직원이라면 집과 가족이 왜 그립지 않겠습니까. 1년에 두 번 정도는 자연농원에 와서 놀이기구도 타고, 귀신의 집에도 들어가고, 사파리에서 동물 구경도 하고 그거 해줄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실제 당시 근무했던 지인에게 물어보니 가족들을 자연농원에 초대했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삼성에서 그것을 직원 복지사항에 넣어주었나 봅니다.
직원들은 뒤이어 ‘성취감을 얻도록 포상제도를 강화한다’, ‘전문 분야별 교육 등에 적극 참여해 양돈업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부심과 천직사상을 고양시킨다’ 등등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대기업 축산이나 소규모 농가나 일은 다를 게 없으니 고된 게 당연하고, 직업에 대한 인식도 우와, 할 만한 직군으로 거론되지 않는 요즘과 별반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꽤 인상적인 두 부분의 기록이 있어 발췌해 봅니다.
남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재단할 게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일의 가치를 깨닫고 미래에 대한 포부를 갖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달은 듯했습니다.
삼성이 초일류사회를 꿈꾸고 이룬 것처럼 그들의 생각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4. 마치며
오늘은 삼성그룹의 자연농원 사양과 1981년도 특별교육 보고서를 통해 과연 대기업에서 돼지 키우는 것이 소규모 축산농가에서의 경우와는 뭐가 다를지, 그때의 직장인과 오늘날 직장인의 입장에 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밥을 빌어먹더라도 대감집 종놈이 낫다’는 부모님 말씀에 대기업 입사를 지원했다던 한 신입사원의 현실적인 자기소개서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요.
당시 도전에 성공했던 그는 ‘대감집’에서 일 잘하면서 밥 잘 먹고 지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하군요.